제주 연극, 1950~60년대 발자취

제주 연극의 시작과 발전
연극은 배우가 각본에 따라 사건이나 인물을 말과 동작으로 관객에게 보여 주는 무대 예술입니다. 배우를 통해 간접적으로 인생을 체험하고, 배우의 숨소리와 표정, 관객과의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연극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제주에서도 이러한 연극 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봅니다.
초기 제주 연극의 뿌리
제주 연극의 시작은 1934년 제주 출신 김진문이 중앙 극단 금희좌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전과자, 홍길동전 등의 극본을 쓰고 연출과 배우로 참여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제 말기에는 세브란스의전 홍순억과 제주농업학교 김기환 등이 중심이 되어 학생극 운동을 펼쳤습니다. 학생극 운동은 학생들이 주도하는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연극을 전개하는 활동입니다.
1940~50년대 학생극과 피난민 연극
1947년 중앙여중 박애봉이 극본을 쓰고 연출한 춘하추동은 제주 지역 학생연극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6.25 전쟁 이후 중앙 연극인과 동호인들이 제주로 피난 오면서 연극은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 장병 위문 공연을 중심으로 활발해졌습니다. 이곳에서 조직된 언예대는 신극에 대한 인식과 무대 예술 분야에 대한 도민들의 이해를 높였습니다.
언예대에는 극작가 유호와 연기인 박옥초, 황해, 구봉서, 양석천, 양훈, 가수 남인수, 신카나리아 등이 참여했습니다. 피난민 연극인 김묵, 송훈, 이배정, 계칠성, 김광빈, 심원, 김용수, 정남혁 등도 활발히 활동하며 도내 연극 기반을 다졌습니다.
학생연극과 연극 단체의 결성
도내 연극인 김기형, 안흥찬, 김규영, 김한수, 이봉준 등과 피난민 연극인들은 학생연극에 힘써 학예회 때마다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1950년 11월 오현고등학교 주최 전도학생종합예술제는 제주 최초 학생연극 행사로 기록되었으며, 제주동교가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1956년 10월 23일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제주도지부 연극 분과가 결성되어 이후 제주도연극협회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1959년 11월 전남일보사가 주최한 제4회 전국남여중고등학교 연극경연에서 신성여고가 마지막 잎새로 단체 최고상과 개인 연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1960년대 연극의 침체와 부흥
1960년대 5.16 군사 정변으로 기존 문화예술단체가 해체되면서 연극은 침체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1962년 1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가 발족하고, 4월 29일 한국예총 제주도지부가 결성되면서 제주도연극협회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1962년 5월 제1회 제주예술제에서 제주도연극협회가 주관한 연극제가 개최되었으며, 제주여중고와 신성여고의 연극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다만 다른 학교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으로 인해 연극 활동이 위축되었습니다.
한편 아동극은 활발히 전개되어 1963년 제주대학 병설교육과가 전도아동극경연대회를 창설, 주최했습니다. 평대초등학교는 서로 돕는 곰을 출품해 최우수작에 선정되고, 전국아동극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연극 공간과 대표 공연
1960년대 이전 제주 연극 활동 공간은 주로 학교 강당이나 노천에 천막을 친 가설극장이었습니다. 제주극장은 조명이 갖춰진 다목적 공간으로 학예회, 노래자랑, 강연회 등 다양한 행사 무대로 활용되었습니다. 이후 중앙극장과 1961년 개관한 제일극장이 무대 공간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969년 예그린악단은 제주를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 배비장전을 악극화한 살짜기 옵서예를 제주시민회관에서 공연해 도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제주 연극의 의미
연극은 관객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며 깊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제주 연극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과정은 이 땅의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