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달린 예래

논짓물에서 시작된 생태문화기행
서귀포시 예래마을의 자연과 생활문화를 달리기로 살펴보는 예래 생태러닝 프로그램이 2026년 10월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논짓물에서 대왕수천 예래생태공원까지 이어지는 탐방로를 왕복하며 바다와 용천수, 마을의 역사를 함께 만났다.
이번 행사는 2026년 8월 하례숲놀이와 9월 효돈산책에 이어 마련된 서귀포 생태문화기행의 세 번째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경관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 속을 직접 달리며 지역의 생태와 문화를 이해하는 일정으로 구성됐다.
출발 지점은 논짓물 야외공연장이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사전 신청한 참가자들이 공연장에 모였고, 서귀포시청 청정환경국장의 격려사에 이어 예래마을 생태해설사의 마을 해설이 진행됐다. 바닷바람이 부는 야외공연장 주변에는 러닝을 준비하는 참가자들과 진행 인력이 차례로 자리했다.
예래라는 이름에 담긴 전설
출발에 앞서 참가자들은 예래마을의 지명과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설에 따르면 과거 마을에 재앙이 이어지던 시기에 길을 지나던 고승이 동쪽 바다의 범섬을 범의 모습으로 풀이했다. 범섬의 강한 기운이 마을을 향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고승은 마을 뒤편 군산오름을 두 다리를 뻗고 누운 사자의 형상으로 바라봤다. 이어 범에 맞설 사자의 의미를 담아 마을 이름을 사자가 온다는 뜻의 예래로 부르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범섬의 기운을 누르고 마을이 평온해졌다는 것이 해설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는 코스 곳곳에서 확인되는 사자상과 예래의 지형을 이해하는 배경이 됐다. 참가자들은 달리기에 앞서 범섬과 군산오름, 예래마을 사이에 전해지는 문화적 맥락을 먼저 살폈다.
초보자를 위한 기초 러닝 수업
예래러닝은 러닝 초보자를 중심으로 운영됐다. 본격적으로 코스를 달리기 전 런투유 김진영 대표와 강사진이 기초 러닝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은 가벼운 몸풀기로 시작됐다. 이어 A 스킵과 C 스킵, 팔 동작, 케이던스 러닝 등 달리기에 필요한 기본 동작을 차례로 익히는 시간이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강사진의 설명과 시범에 맞춰 자세를 점검하며 몸을 풀었다.
기록 경쟁보다 안전한 완주와 생태 체험에 초점을 맞춘 일정인 만큼 참가자의 속도와 숙련도를 고려해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출발 전 기본 동작을 충분히 연습하면서 탐방로에서 지켜야 할 안전 사항도 함께 확인했다.
바다와 한라산을 잇는 왕복 5킬로미터
기초 수업을 마친 참가자들은 파도가 이어지는 논짓물을 출발해 대왕수천 예래생태공원을 돌아오는 왕복 약 5킬로미터 코스에 들어섰다. 짧은 해안 구간을 지난 뒤 예래생태공원의 탐방로와 물길을 따라 달리는 순서였다.
코스에서는 바다와 한라산을 함께 조망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해안의 바람을 맞으며 이동했고, 예래생태공원에 진입한 뒤에는 흐르는 물소리와 주변 식생을 가까이에서 접했다.
초보 참가자가 많았던 만큼 전체 주행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강사진은 바닥 상태와 보행자의 위치를 알리는 안전 구호를 지속해서 전달했다. 참가자들은 탐방로를 이용하는 보행자와 주변 지형을 살피며 코스를 이어갔다.
코스 중간의 지원 지점에는 과일과 이온음료, 포도당 캔디가 준비됐다. 에어파스와 쿨링 스프레이 등 달리기 도중 사용할 수 있는 물품도 비치됐다.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잠시 호흡을 정돈한 뒤 생태해설을 들었다.
31개 용천수 가운데 한자 이름을 지닌 조명물
첫 번째로 소개된 용천수는 조명물이었다. 해설에 따르면 예래마을에는 모두 31개의 용천수가 있으며, 대부분 한글 이름을 갖고 있다. 조명물은 이 가운데 한자 이름으로 불리는 용천수다.
조명물의 조명은 아침 조와 밝을 명을 사용한다. 아침의 밝은 빛이 가장 먼저 닿는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으로 설명됐다. 이 물은 과거 마을 주민의 식수원이었으며 빨래터와 목욕 공간으로도 이용됐다. 남탕은 현재까지도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소개됐다.
풍부한 물은 주민 생활뿐 아니라 지역의 생산 활동에도 활용됐다. 조명물을 이용하면서 전분공장을 가동하기가 수월해졌고, 이는 지역 경제 활동과도 연결됐다. 용천수가 식수와 생활용수, 생산 기반의 역할을 함께 담당했던 셈이다.
조명물 일대는 2002년 제2호 반딧불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해설에서는 매년 8월 중순부터 9월 말 사이 이 일대에서 많은 반딧불이를 관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용천수와 반딧불이 서식 환경에 관한 내용을 들은 뒤 다음 지점으로 이동했다.
하루 약 1150톤이 솟는 대왕수
두 번째 지원 지점에는 대왕수가 자리했다. 이곳에도 과일과 음료가 마련됐으며, 참가자들은 휴식을 취하면서 대왕수의 유래와 쓰임을 들었다.
대왕수는 예래마을 일대에서 물이 가장 많이 솟는 용천수라는 의미로 이름이 붙었다. 한글 이름은 큰이물이다. 용천수가 흐르는 곳 사이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왕 자 형태도 남아 있다.
해설에서 소개된 대왕수의 하루 용출량은 약 1150톤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조명물 용출량의 약 7배에서 8배에 이르는 규모다. 대왕수의 풍부한 수량은 예래마을의 생활사와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 제시됐다.
6·25전쟁 당시에는 제2육군훈련소 소속 군인 약 6000명의 식수로 사용됐다. 평소에는 마을의 목욕 공간으로 활용됐으며 대왕수는 여성만 이용하는 곳이었다. 남성들은 왼편에 있는 소왕수를 별도로 이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왕수 아래쪽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이 일대에 주둔했던 일본 기마부대가 전기를 생산할 때 사용한 물레방아의 흔적도 남아 있다. 오늘날 생태공원으로 정비된 공간 안에 주민 생활과 군대 주둔의 역사가 함께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논짓물로 돌아온 참가자들
대왕수 해설을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논짓물 방향으로 달렸다. 물길과 바람을 따라 이동한 뒤 해변에 도착하면서 약 5킬로미터의 왕복 코스를 마무리했다. 도착 지점에서는 카우벨 소리가 완주자들을 맞았고, 참가자들은 이온음료로 수분을 보충했다.
러닝 이후에는 긴장한 근육을 풀기 위한 마무리 운동이 이어졌다. 현장에는 완주 기념 촬영 공간도 마련됐다. 강한 바람으로 배너를 고정하기 어려워지자 운영 인력이 직접 배너를 잡고 촬영을 지원했다.
참가자들에게는 스카프와 간식이 제공됐다. 이번 일정은 달리기와 함께 예래마을의 지명 전설, 용천수의 생활사, 생태환경과 근현대사의 흔적을 한 코스에서 살펴보도록 구성됐다.
2026년 생태문화기행 마지막 일정
2026 서귀포 생태문화기행은 8월부터 11월까지 하례, 효돈, 예래, 오조에서 모두 네 차례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제주도민과 관광객이 함께 서귀포의 자연을 걷거나 달리며 지역 생태문화를 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주최와 주관은 서귀포시가 맡았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2026년 11월 14일 오조습지와 족지물을 연계한 오조러닝이다. 습지 생태와 마을의 물 문화를 달리기를 통해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되며, 관광객과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11월 중 참가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