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삼양동 옹관묘와 구리화살촉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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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삼양동 유적과 옹관묘의 특징

제주 삼양동 유적은 제주시 삼양동 해발 20m 내외의 해안 단구에 위치해 있으며, 1996년 토지구획 정리사업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후 230여 기가 넘는 주거지가 확인된 대규모 선사시대 마을 유적입니다. 이 유적은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기원후 1세기경까지, 즉 청동기 시대 후기에서 초기 철기시대로 이행하는 탐라국 형성기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옹관묘는 항아리 두 개를 주둥이끼리 맞대어 만든 합구식 구조로, 완벽한 밀폐 공간을 형성하여 시신을 보존하는 고도의 기술적 배려가 돋보입니다. 옹관묘는 제주 지역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독특한 장례 문화의 증거로, 지석묘(고인돌)와 공존하면서도 다른 계층이나 사상적 배경을 가진 집단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옹관묘가 작게 느껴지는 이유

삼양동 옹관묘는 성인 남성의 신체 크기에 비해 매우 작아 보입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주요 학설이 있습니다.

  • 세골장 또는 이차장 가설: 시신을 가매장하거나 풍장하여 살을 썩힌 후 뼈만을 수습해 씻고, 그 뼈를 옹관에 담아 최종 매장하는 방식으로, 뼈만 담기 때문에 작은 크기의 옹관으로도 충분하다는 설명입니다. 이는 죽음을 단절이 아닌 긴 전이 과정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줍니다.
  • 유소아 전용 묘역 가설: 높은 영아 사망률을 고려할 때, 옹관묘는 특별한 신분 계층의 아이들을 위한 무덤일 가능성이 있으며, 부모의 주술적 염원이 담긴 장례 방식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옹관묘 주인의 사회적 지위

옹관묘에 묻힌 이들은 최상위 지배층은 아니지만 권력 주변부에 위치한 유력자로 추정됩니다. 당시 제주 사회의 최상위 리더들은 대형 지석묘에 묻혔으며, 옹관묘는 중간 관리자나 전문 장인, 촌장의 혈족 집단의 무덤으로 보입니다. 이는 노동력 투입과 사용된 토기의 가치, 묘광 시설의 정교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권력 상징 도구와 정치적 의미

삼양동 유적에서 출토된 구리거울, 구리화살촉, 간돌검 등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당시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정치적 상징물입니다.

  • 구리거울: 제주에는 구리나 주석 광산이 없어 모두 외부에서 수입된 청동제품입니다. 구리거울은 희소성과 제의적 기능을 갖추어, 지배자가 태양신의 대리자로서 권위를 과시하는 도구였습니다.
  • 구리화살촉: 청동 화살촉은 최첨단 무기로서 무력과 위세를 상징하며, 실제 전투보다는 의례용이나 무덤 부장품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간돌검: 청동검을 모방한 돌검으로, 권력의 상징성을 내포하며 지휘관의 상징이나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옥환: 제주산이 아닌 외부에서 유입된 옥으로 만든 고리로, 세련된 문화적 취향과 부를 상징합니다.

삼양동 유적의 역사적 의미

삼양동 유적은 제주가 단순한 부속 도서가 아니라 동북아시아 해양 교류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줍니다. 복원된 움집과 전시관을 통해 방문객들은 2,000년 전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회 구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옹관묘와 권력 상징 도구들은 당시 사회의 복잡한 계층 구조와 문화적 교류를 증명하는 중요한 유산입니다.

제주 삼양동 옹관묘와 구리화살촉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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